27부 — 무너지는 가면
27부 — 낮의 평온, 그러나 흔들리는 무대
윤가의 집은 겉으로 보기에 여전히 단정하고 평화로웠다. 윤 사장은 출근 전 서재에서 신문을 읽었고, 아내는 정원에서 꽃을 다듬으며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며 장난을 쳤다. 그러나 그 모든 장면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허상에 불과했다. 무대 뒤편에서는 이미 균열이 자라나고 있었다.
다은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남궁의 낮은 숨소리가 맴돌았다. 눈을 감으면, 그의 그림자가 거실에 드리워진 것 같았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어. 가면을 쓰고, 평범한 척하고…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석민은 운전 중 라디오 소리를 키웠지만, 남궁의 목소리는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윤가의 대화를 가져와라.” 그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마치 또 다른 그림자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손은 핸들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얼굴이 굳어졌다. 이번 그림 속 남궁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윤 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남궁을 윤가의 ‘또 다른 아버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공책에 적었다. “남궁 — 윤가의 세계에 스며듦. 아이들의 현실과 동화.”
기우는 과외 중 아이가 내뱉은 한마디에 피가 얼어붙었다. “선생님, 어제 아저씨가 아빠랑 얘기하던데요.” 그 순간 기우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억지로 웃으며 “꿈을 꿨겠지”라고 답했지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궁은 이제 윤가의 무대 위로 올라서고 있다.”
27부 — 균열 속의 협의
그날 저녁, 네 가족은 거실에 모였다. 성호가 공책을 펼쳐 낮게 말했다. “남궁은 이제 윤가의 삶을 요구하고 있어. 단순한 소리나 냄새가 아니야. 그는 그들의 대화, 그들의 비밀까지 원하고 있어.”
다은은 두 손을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윤가의 삶까지 침범하면, 언젠가는 들킬 수밖에 없어.”
석민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끊을 수도 없어요. 남궁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요. 그와 맞서는 순간, 우린 끝이에요.”
기우는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린 두 얼굴을 가져야 해요. 겉으로는 윤가의 충실한 하인처럼, 뒤로는 남궁의 동맹처럼. 두 가면을 동시에 써야 해요.”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곧 동의였다. “그들은 이제 두 개의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해야 했다.”
27부 — 남궁의 시험
며칠 후, 남궁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계단을 올라와 거실에 서더니 네 가족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날카롭고 피로에 절어 있었으나, 동시에 광기로 빛났다.
“…너희가 진정 나의 동맹인지 시험해 보겠다.” 남궁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 사장의 대화를 가져와라. 그의 사업 이야기, 그의 불안, 그의 욕망. 그것들을 나에게 전해라.”
다은이 얼어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그를 속이라는 건가요?” 남궁은 웃으며 대답했다. “…속이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거다. 그는 이미 나의 상대다. 너희는 단지 다리를 놓는 거지.”
석민은 주먹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남궁은 눈빛을 번뜩이며 속삭였다. “…실패는 곧 배신이다. 배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네 가족은 이미 알았다. 그 시험은 곧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27부 — 무너지는 가면
그날 밤, 네 가족은 거실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은은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우린 이제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어.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석민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버티는 게 답이에요. 우리가 쓰는 가면이 무너지는 순간, 우린 다 끝장입니다.”
성호는 공책을 덮으며 낮게 말했다. “가면은 언젠가 벗겨진다. 그게 세상의 진리야.”
기우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는 순간, 우린 남궁 앞에 벌거벗은 채 서게 될 거예요. 그땐 선택도, 도망도 없어요.”
집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면이 무너질 때 다가올 폭풍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이 집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가면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