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 낯선 집의 오래된 자국

5부 —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집 안에는 여전히 낯선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담요, 오래전부터 놓여 있었던 듯한 통조림, 계단 턱의 고무패킹이 닳은 자국, 그리고 지하에서 간혹 풍겨 오는 이상한 비누 냄새. 다은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건 문여사의 향이 아니었다. 문여사는 라벤더 향을 즐겼지만, 이건 더 싸고 날카로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냄새였다. 그녀는 청소를 하면서도 그 냄새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여전히 이 집 어딘가에 살고 있는 듯했다.

로봇청소기가 금지된 문 앞에서 멈춘 날, 다은은 심장이 잠시 굳는 걸 느꼈다. 청소기의 작은 바퀴가 턱에 걸려 헛돌았을 뿐이지만, 그 순간 금지된 문 너머에서 은은한 ‘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안에서 무심히 떨어뜨린 듯한, 그러나 분명 내부에서만 날 수 있는 소리였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집은 언제나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손대지 말라’는 표지를 곳곳에 남긴다. 그 표지를 어기는 순간, 집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대신 삼켜 버린다.

5부 — 완벽과 불청객 사이

주말이면 윤가에는 간혹 손님이 들렀다. 번쩍이는 파티는 아니었지만, 와인이 열리고 소파에 사람들이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그런 날이면 석민은 주차를 정리하고, 성호는 정원의 조명을 점검했으며, 다은은 부엌 동선을 미리 비워 두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청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틈에서 나타났다.

어느 날,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비가 쏟아졌다. 현관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렸고, 차인정이 문을 열었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문 아래엔 작은 비닐봉투가 놓여 있었다. 안에는 라면, 통조림, 물티슈가 들어 있었다. 다은은 그것이 집안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품이라는 걸 단번에 알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이 집과 전혀 다른 삶의 흔적처럼 보였다. 그녀는 봉투를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재활용함에 버렸다. 그러나 그 순간, 금지된 문 너머에서 다시금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집은 여전히 그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단지, 그 말이 들리길 원하지 않을 뿐이었다.

5부 — 흔들리는 발판 위에서

밤이 깊어지자, 석민은 차 안에 앉아 라디오를 꺼 둔 채 자신의 얼굴을 창에 비추어 보았다. 이제 그는 이 집에서 ‘예상 가능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정체성을 조금씩 잃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심히 던지는 “다음 주에도 오시죠?”라는 질문은, 사실상 그의 발을 이 집에 더 단단히 묶어 두는 족쇄였다. 약속은 늘 사람이 어디에 속박되어 있는지를 드러낸다.

성호는 거실 불을 끄며 창밖 불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높은 건물의 불빛은 오래 가지만, 낮은 건물의 불빛은 자주 꺼졌다. 그는 유리창에 맺힌 물기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지웠다. 다은은 금지된 문 앞을 다시 닦았다. 닦아도 먼지는 금세 쌓였지만, 닦아야만 보이는 자국이 있다. 닦는 사람은 기억한다. 집은 늘 흔적을 남기며,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집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했다. 그러나 네 사람은 모두 알았다. 그들의 발바닥에는 지난밤의 자국이 얇게 남아 있었고, 그 자국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척하는 발판 위에서, 그들은 이미 느슨해진 못을 밟고 있었다.

석민은 공책을 펼쳐 작게 기록했다. “문 아래 소리 — 확인 필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그 밑에 굵게 밑줄을 그었다. “안심의 값은 계속 올라간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집이 주는 안심은 곧 집이 요구하는 대가였다. 그 대가는 이제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5부 - 낯선 집의 오래된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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