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부 — 검은 아카이브의 심장

어둠 속으로, 첫 걸음

3:08. 강철문이 진동하며 낮게 울렸다. 순간, 거대한 문이 열리며 서늘한 공기가 몰려나왔다.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잉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은서는 녹음기를 더욱 단단히 쥐었고, 지현은 숨을 고르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다섯 증언자들은 한 명씩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 문을 지나면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두머리는 문 앞에서 물러나며 낮게 웃었다. “들어가 봐라. 너희가 불길이라고 믿는다면, 이 어둠에서 스스로 증명해라.”

우린 계단을 내려갔다. 바닥은 축축했고, 벽마다 무한대의 표식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흔적 같았다. 은서가 속삭였다. “아버지가… 여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해문은 여길 지나갔다. 그의 흔적은 반드시 남아 있을 거야.”

기억의 복도

지하 깊은 곳으로 들어서자, 좁은 복도가 이어졌다. 벽에는 수천 개의 서류함이 줄지어 있었고, 각 서류함엔 날짜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2005-06-15 / 회수 기록”, “2012-11-30 / 삭제 명령”, “2021-03-08 / 증언 거부”

기록하는 자는 떨리는 손으로 원고에 적어 내려갔다. “여기는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야. 사람들의 목소리, 기억, 사건… 모두 강제로 재단된 기록이야.”

은서가 서류함을 열려 했지만, 내부 증언자가 손을 막았다. “함부로 열면 안 돼. 이건 단순한 종이가 아니야. 읽는 순간, 네 기억에 새겨진다.”

순간, 어둠 속에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돌려줘… 내 이야기를…” 다은이 귀를 막으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속삭임은 멈추지 않았다. 복도는 살아있는 듯,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첫 번째 시험

복도의 끝, 우리는 거대한 홀에 도달했다. 중앙에는 검은 강철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수십 개의 마이크가 줄지어 있었다. 마이크는 자동으로 켜져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피해자였다. 그러나 동시에 가해자였다. 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지워졌다.”

의사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건… 증언을 왜곡한 기록이야. 누군가의 고백을 잘라 붙여 만든 거다.”

노래하는 자가 목을 움켜쥐고 음을 흘렸다. “거짓을 진실처럼 들리게 만드는 장치군…”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홀 안에서 울려 퍼졌다. “…이건 너희의 시험이다. 거짓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증언은 불꽃이 아니라 재에 불과하다.”

지현이 주먹을 움켜쥐며 마이크를 하나 뽑아냈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우리가 다시 말해야 해. 목소리를 되찾아야 해.”

환영과의 대치

홀의 벽이 흔들리더니, 그림자 같은 환영들이 나타났다. 얼굴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생생했다. “넌 나를 버렸다.” “넌 날 지켜주지 않았다.” “너도 결국 설계자의 도구였다.”

은서가 비틀거리며 속삭였다. “저건… 아버지의 목소리 같아.” 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귀 기울이지 마. 저건 왜곡된 메아리야.”

그러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다섯 증언자조차 주저하며 무릎을 꿇으려 했다. 그때 기록하는 자가 원고를 펼치며 크게 외쳤다. “거짓도 기록된다! 하지만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린 진실을 새로 쓸 수 있다!”

그의 말에 순간 환영들이 흔들렸다.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다시 복도로 숨어들었다. 우린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검은 심장으로

홀의 끝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이번엔 숫자가 아니라, 문장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증언 없는 진실은 없다.”

의사가 낮게 말했다. “우린 이제 선택해야 해. 이 문을 열면, 더 이상 단순히 피해자나 증인이 아니야. 우린 역사를 다시 쓰는 자가 될 거다.”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이미 선택했어. 이제 남은 건 증명뿐이야.”

문이 진동하며 서서히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몰려왔고, 그 너머에는 더 깊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숨을 고르며 그 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알았다. 23부는 끝났지만, 진짜 아카이브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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