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부 — 검은 아카이브의 문
북쪽으로 향하는 발걸음
성채의 잿더미를 뒤로 하고, 우리는 북쪽 구역으로 향했다. 오래 전 봉쇄된 산업지대, 지도에도 더 이상 표시되지 않는 구역이었다. 가로등은 모두 부서져 있었고, 전선은 잘려진 채 매달려 있었다. 은서는 녹음기를 껴안은 채 걸었고, 지현은 여전히 부러진 팔을 고정한 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섯 증언자들은 각자의 상처를 지닌 채, 그러나 서로를 지탱하며 걸었다.
“여긴…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 같아요.” 은서가 낮게 속삭였다. 내부 증언자가 대답했다. “살지 않는 게 아니라, 살지 못하게 막은 거지. 여기는 기억을 묻어버린 구역이야. 사람들이 여기서 본 것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어.”
우린 모두 알고 있었다. 이곳 어딘가에 검은 아카이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설계자의 심장부, 가장 은밀한 기억 저장소라는 것을.
폐허의 전조
밤이 깊어가며 공기는 더 차가워졌다. 오래된 건물 벽에는 검은 낙서가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308을 지켜라.”, “증언은 불꽃이다.”, “설계자는 듣고 있다.” 서로 모순된 메시지들이 겹쳐 있었다.
노래하는 자가 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건 누군가의 외침이야. 지워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흔적이지.” 기록하는 자가 그 문장을 옮겨 적으며 중얼거렸다. “증언은 살아있다. 지워진 글씨도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느꼈다. 그림자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설계자의 요원들이 아니었다. 더 조용하고, 더 오래된 무언가였다. 은서가 몸을 움츠렸다. “누가… 지켜보고 있어요.”
아카이브의 문
폐허의 끝, 오래된 지하철 역 입구가 나타났다. 철문은 녹슬어 있었지만, 그 위에는 여전히 선명하게 무한대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내부 증언자가 낮게 말했다. “여기야. 검은 아카이브의 입구.”
우리는 숨을 고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계단 아래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검은 강철로 만들어진 문, 중앙에는 3:08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의사가 문을 살피며 말했다. “시간 자물쇠다. 특정한 순간에만 열린다.” 나는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우린 이미 알고 있잖아. 3:08…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설계자의 환영
우리가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왔군. 선택했다고 믿는 자들.” 검은 그림자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코트에는 여전히 은빛 무한대 핀이 달려 있었다. 설계자의 우두머리, 그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이 문은 아무나 열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거웠다. “열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 나올 수는 없어. 네가 찾는 진실은 곧 너를 삼킬 것이다.”
지현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우린 이미 삼켜졌다. 이제는 토해낼 차례야.” 우두머리의 눈빛이 번뜩였다. “좋다. 그럼 증명해 봐라. 너희가 증언자라면, 그 증언이 진짜 불길인지. 이 문이 답을 줄 것이다.”
예고된 대결
우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서는 두려움 속에서도 눈빛을 굳혔다. 노래하는 자가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음을 흘렸고, 행동하는 자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기록하는 자는 떨리는 손으로 원고를 덮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말했다. “증언은 피로 쓰여도, 불로 읽힌다.”
3:08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검은 문이 진동하며 낮게 울렸다. 우리는 알았다. 다음 순간, 이 문이 열리며 진짜 심장부와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설계자의 우두머리는 여전히 그 문 앞에서 웃고 있었다. “자, 증언자들아. 잿더미에서 불꽃을 꺼냈다면… 이 어둠 속에서도 불을 지켜낼 수 있는지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