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 네 번째 증언자

밤의 길목에서

폐허가 된 도서관을 빠져나온 뒤, 우리 일행은 무너진 도심 외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사, 노래하는 자, 기록하는 자—세 명의 증언자가 우리 곁에 있었지만, 그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은서는 품에 안은 기록 묶음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말했어요. 다섯 명의 증언자가 필요하다고. 이제 남은 건 두 명이에요.” 성호는 공책을 열어 굵은 글씨로 적었다. “네 번째 증언자 — 단서 필요.” 지현은 주위를 살피며 경계했다. “설계자들이 우릴 그대로 두진 않을 거다. 네 번째 증언자는 분명 그들의 감시 아래에 있을 거야.” 나는 숨을 고르며 은서에게 말했다. “녹음기를 다시 들어봐. 아버지가 단서를 남겼을 거야.”

아버지의 네 번째 암시

은서는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잡음 뒤로 박해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번째는 행동으로 증언하는 자였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진실을 드러냈다. 설계자들의 실험을 깨부수며, 자신의 몸으로 저항을 기록했다. 그의 흔적은 상처와 흉터로 남아 있다.”

은서가 눈을 크게 떴다. “행동으로 증언하는 자라니… 그건 무슨 뜻일까요?” 나는 낮게 말했다. “말이나 글이 아니라, 직접 부딪치며 진실을 남긴 사람일 거야. 몸에 새겨진 상처가 그 증언이라는 거지.” 지현은 짧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적을 따라가야 해. 싸움이 있었던 곳, 저항의 흔적이 남은 곳.”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네 번째 증언자 — 행동. 장소: 저항의 폐허.”

저항의 폐허

우리는 오래전 폭발 사고로 폐허가 된 공장 지대로 향했다. 녹슨 철골 구조물이 밤하늘을 향해 기괴하게 솟아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며 금속성이 울렸다. 바닥에는 오래전의 전투 흔적이 남아 있었다. 탄피, 불에 그을린 흔적, 그리고 무너진 벽. 그곳은 분명 누군가 격렬히 저항했던 장소였다.

은서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이곳을 말한 걸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우리는 네 번째 증언자를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팔에는 깊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누구냐.”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힘이 있었다.

행동하는 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린 증언자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 네 번째 증언자입니까?” 남자는 낮게 웃었다. “증언자? 나는 이름도, 목소리도 필요 없다. 내 몸이 곧 기록이다.”

그는 상처 난 팔을 내밀며 말했다. “이 흉터 하나하나가 내가 본 진실이다. 나는 설계자의 실험실을 불태웠고, 그들의 하수인들과 맞섰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몸으로 말한다.”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아버지가 당신을 말했어요. 말보다 행동으로 증언하는 자라고.”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박해문… 그를 아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아니, 당신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 “좋다. 하지만 행동으로 증언한다는 건, 함께 싸운다는 뜻이다. 너희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나?”

우린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다.”

설계자의 습격

그 순간, 공장 바깥에서 굉음이 울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무리들이 몰려왔다. 설계자의 하수인들이었다. 지현은 즉시 권총을 꺼내며 외쳤다. “들어왔다! 방어해!” 행동하는 자는 곧바로 철골을 움켜쥐더니, 맨몸으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과 발길질이 번개처럼 휘둘러졌다. 총성이 울려 퍼졌지만, 그는 몸을 날려 상대를 제압했다.

은서는 녹음기를 켜며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틀었다. “…행동은 곧 증언이다. 쓰러지지 않는 한, 증언은 살아 있다.”

우린 그 목소리에 힘입어 함께 싸웠다. 총성과 금속성 충돌음이 뒤섞이며, 폐허는 전쟁터가 되었다.

증언으로서의 상처

전투가 끝나고, 남자는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서 있었다. 그의 몸은 피로 얼룩졌지만, 눈빛은 굳건했다. “봐라. 이 흉터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설계자들은 이걸 지우려 하지만, 나는 내 몸으로 남긴다.”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아버지는 맞았어요. 당신은 말하지 않아도 증언자예요.” 성호는 공책에 크게 적었다. “네 번째 증언 확보 — 행동으로 남은 기록.”

지현은 피 묻은 손으로 총을 닦으며 말했다. “이제 네 명이 모였다. 남은 건 단 한 명.”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지막 다섯 번째 증언자를 찾으러 가자.”

다섯 번째를 향해

우리는 폐허를 뒤로하고 다시 어둠 속 도시로 걸어갔다. 설계자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를 따라붙고 있었다. 은서는 녹음기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아버지가 말한 마지막 증언자는 누구일까요.” 나는 낮게 대답했다. “그건… 아마 가장 힘든 만남이 될 거야. 마지막 증언은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을 테니까.”

성호는 공책에 굵게 적었다. “네 번째 증언 확보 — 다음 목표: 다섯 번째 증언자.”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은 여전히 몰아치고 있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마지막 증언자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5부 - 낯선 집의 오래된 자국

1부 - 비밀정원, 첫 문을 두드리다

4부 - 균열의 시작, 안심의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