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 두 번째 증언자
폐허를 벗어나며
우리는 비 내리는 병원을 빠져나와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첫 번째 증언자인 의사는 여전히 몸을 떨며 우리 곁에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공허했지만, 입술은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기억은 지워졌다… 하지만, 남는다… 소리 속에 남는다…” 은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당신의 목소리는 지워지지 않아요. 아버지가 그걸 알았어요.” 지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설계자들이 잠시 물러난 건, 우릴 추적하기 위한 포석일 거야. 이제부턴 더 조심해야 해.”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첫 번째 증언 확보 — 다음 단서: 박해문의 두 번째 암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서에게 말했다. “녹음기를 다시 들어봐. 두 번째 증언자에 대한 단서가 있을 거야.”
아버지의 두 번째 암시
은서는 녹음기의 버튼을 눌렀다. 잡음 사이로 박해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번째는 노래하는 자였다. 그는 설계자의 언어를 바꾸고, 기억을 다른 목소리로 옮겼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는 저항이었다.”
은서가 눈을 크게 떴다. “노래하는 자라니… 가수였던 사람인가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노래는 기록의 또 다른 형태야. 그가 목소리로 기억을 보관했다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지현은 짧게 말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무대다. 하지만 그 무대는 아마 지금은 폐허일 거다.”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두 번째 증언자 — 노래하는 자. 장소: 옛 공연장.”
옛 공연장으로
우린 오래된 지하 공연장으로 향했다. 도시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네온사인조차 희미해졌다. 공연장은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고, 입구에는 ‘철거 예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문을 밀자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다. 무대 위에는 오래된 마이크가 여전히 세워져 있었고, 객석 의자들은 반쯤 부서져 있었다.
은서는 무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누군가 노래했겠죠. 아버지가 말한 그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그 노래는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몰라.”
우리가 무대로 올라가자, 오래된 스피커에서 갑자기 잡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낡은 테이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노래했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지만 설계자들은 내 노래조차 지우려 했다.”
지현이 낮게 말했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성호는 급히 메모했다. “노래하는 자 — 생존 가능성 높음.”
두 번째 증언자의 등장
무대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우리는 동시에 몸을 긴장시켰다.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입술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드디어 왔군.” 은서는 놀란 듯 말했다. “당신이… 노래하는 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지금은 목소리를 잃은 자이기도 하지.”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예전의 힘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노래로 기억을 전하려 했다. 설계자의 언어를 뒤틀어, 사람들에게 진실을 속삭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 목소리를 꺾으려 했다.”
나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지금도 증언할 수 있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는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내가 본 걸 말하겠다.”
노래로 남은 기억
그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더니, 쉰 목소리로 낮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가락은 불안정했지만, 가사에는 분명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세 그룹의 사람들, 같은 무대 위의 가면. 피해자도, 가해자도, 증언자도 모두 같은 노래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끊으려 한 자들이 있었다.”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아버지가 말한 건 이거였군요. 노래로 증언한다는 것.” 그는 노래를 멈추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더 오래 노래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증언은 너희에게 넘기겠다.”
성호는 빠르게 메모했다. “두 번째 증언 확보.” 지현은 눈빛을 좁히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우린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설계자들이 곧 도착할 거야.”
설계자의 습격
말이 끝나자마자 공연장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무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 하나가 외쳤다. “목소리는 우리 것이다! 넘겨라!” 지현은 권총을 꺼내며 몸을 낮췄다. “또 시작이군.” 총성이 울리고, 공연장은 전쟁터가 되었다. 우리는 무대 뒤편의 좁은 출구로 몸을 피했다.
노래하는 자는 힘겹게 우리를 따라왔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는 끝까지 말했다. “지켜라… 목소리를 지켜라. 그것이 우리의 무기다.”
도망과 결심
우리는 공연장을 빠져나와 다시 빗속으로 달렸다. 설계자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뒤를 쫓았다. 은서는 녹음기를 품에 안고 속삭였다. “아버지가 말한 두 번째 증언자를 찾았어요. 이제 세 번째로 가야 해요.” 나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제부터는 더 위험할 거야. 설계자들이 우리가 뭘 찾고 있는지 알았으니까.”
지현은 담배를 꺼내려다 멈추고 차갑게 웃었다. “좋아. 이제 우리도 목소리를 가졌어. 그리고 그 목소리는 총보다 강해.”
성호는 공책을 덮으며 크게 적었다. “두 번째 증언 확보 — 다음 목표: 세 번째 증언자.”
우린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둠 속 도시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증언의 여정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