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하 — 발화의 증언

발화의 문을 지나

문이 열리자, 습한 터널 공기와는 전혀 다른 온기가 밀려왔다. 은서는 눈을 크게 뜨며 속삭였다. “여긴… 지상이에요.” 우리가 발을 들여놓은 곳은 오래된 카페였다. 벽은 갈라졌고, 천장은 금이 갔지만, 분명히 한때 사람들로 붐비던 공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문 옆 간판에는 희미하게 ‘발화’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여기가 아버지가 말한 장소구나.” 지현은 카운터 위에 남겨진 낡은 전화기를 주목했다. 수화기를 들어 올리자, 마치 아직 연결된 것처럼 작은 잡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단순한 장식이 아니야. 이곳은 여전히 누군가의 증언을 받아들이고 있어.”

성호는 공책에 크게 적었다. “발화 = 증언의 장.”

아버지의 목소리

우리가 자리에 앉자, 은서는 떨리는 손으로 녹음기를 켰다. 오래된 테이프가 돌아가며, 박해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남긴 기록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실험의 증언이다.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가해자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기 자리를 합리화한다.”

은서는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아버지…”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만약 네가 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너 역시 선택의 길에 서 있다. 기억해라. 발화는 시작일 뿐,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지현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는 알고 있었어. 우리가 여기까지 올 걸.” 나는 녹음기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정말 설계자의 일부였을까, 아니면 반역자였을까.

매복자들

은서가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카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들어섰다. 소매 끝의 은색 문양이 번뜩였다. 그들 중 하나가 낮게 말했다. “여기까지 올 줄 알았다. 목소리는 우리 것이다. 넘겨라.”

지현은 권총을 꺼내 겨누었다. “여긴 증언의 장이다. 네놈들의 협박이 기록될 뿐이야.” 총구가 서로를 겨누며 공기는 단숨에 팽팽해졌다. 은서는 녹음기를 가슴에 안고 속삭였다. “아버지가 남긴 건 빼앗길 수 없어요.”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발화의 첫 시험 = 증언을 지킬 것인가, 잃을 것인가.”

총성과 증언

총성이 터졌다. 카페의 깨진 유리창이 산산조각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우리는 바닥에 몸을 숙이며 테이블 뒤로 숨었다. 나는 은서의 손을 꼭 잡았다. “지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목소리만은 지켜야 해.” 은서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은 빠른 동작으로 반격을 가했다. 두 명이 쓰러졌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때 카운터 위의 오래된 전화기가 울렸다. 오래된 다이얼 소리와 함께, 박해문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기억해라. 설계자는 진실을 지우려 하지만, 발화는 언제나 남는다.”

하수인들의 얼굴이 순간 흔들렸다. 그들은 분명 이 목소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증언의 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기록이야! 너희가 아무리 지워도, 증언은 계속된다!” 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의 녹음을 틀어놓았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다. 나는 증언자다. 그리고 증언은 영원히 남는다.”

그 순간, 하수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물러섰다. 총구가 떨리고 있었다. 지현은 틈을 놓치지 않고 반격하며 나머지를 제압했다. 성호는 공책에 굵게 적었다. “발화 = 증언은 무기.”

새로운 길

전투가 끝난 뒤, 카페는 산산조각난 유리와 연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켜냈다. 은서는 녹음기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건, 살아남으라는 명령이 아니라… 말하라는 부탁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우린 단순히 도망자가 아니라 증언자가 되어야 해.”

지현은 피 묻은 손으로 권총을 정리하며 말했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됐어. 설계자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린 목소리를 갖고 있어. 그게 가장 강한 무기지.”

성호는 공책 마지막 장을 열고 크게 적었다. “발화에서 시작된 증언 — 앞으로 다섯 명의 증언자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했다. “폭풍은 계속되지만, 발화는 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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