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 중 — 기록을 둘러싼 추격

어둠 속의 총성

철제 문이 완전히 닫히기도 전에 금속성이 울렸다. 누군가 바깥에서 강제로 문을 열려는 소리였다. 지현은 재빠르게 총을 장전하며 은서에게 몸을 낮추라고 손짓했다. “우린 시간이 없어. 곧 들어올 거야.” 은서는 손에 쥔 녹음기를 꽉 잡으며 물었다. “이 기록… 꼭 지켜야 하나요?” 지현은 차갑게 대답했다. “기록은 곧 증거야. 증거는 살아남는 이유지.”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금속 벽을 스치고 흩어진 파편이 은서의 얼굴을 스쳤다. 나는 그녀를 감싸 안고 몸을 숙였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야.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아카이브 안쪽으로 달렸다. 플랫폼을 따라 뻗은 어두운 통로, 그 끝에는 희미한 빛줄기가 새고 있었다.

숨겨진 통로

통로 끝에는 벽돌로 막힌 듯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니 벽돌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나왔다. “이건 가짜 벽이야.” 내가 중얼거렸다. 성호가 공책에 그림을 그리듯 벽의 문양을 기록했다. “여길 지나면 다른 플랫폼으로 연결될 거야. 아버지가 남긴 흔적일지도 몰라.”

우리가 벽을 밀자, 미묘한 금속음과 함께 틈이 열렸다. 그 안에는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지현은 앞장서며 말했다. “빨리 내려가. 이 위에선 오래 버틸 수 없어.”

우리가 계단을 내려가자 위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설계자의 하수인들이 이미 아카이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은서는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우릴 끝까지 따라오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우린 더 깊이 숨어들어갈 수 있어.”

기록의 무게

계단 아래에는 또 다른 방이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방송 장비와 마이크가 늘어서 있었고, 녹음 테이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방 한쪽에는 “발화”라는 단어가 크게 쓰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은서는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그 위에는 박해문 1997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말했다. “아버지… 정말 여길 다녀가셨군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건 단순한 흔적이 아니야. 이건 증언이고, 증언은 무게를 가진다.”

지현은 테이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 안에 뭐가 담겨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 들을 수 없어. 소리조차 위치를 드러낼 수 있어.” 성호는 공책에 굵은 글씨로 적었다. “발화 = 목소리 = 증언. 다음 단서는 반드시 그 카페에서 찾을 수 있다.”

설계자의 추격

우리가 방을 나서려는 순간, 계단 위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발화를 찾는 자들, 이곳에서 끝내라.” 설계자의 하수인들이 따라 내려온 것이다. 금속 계단이 울리며 여럿이 내려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지현은 권총을 들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들은 수가 많았다.

나는 은서에게 속삭였다. “지금 이 방에 오래 머물면 안 돼. 우린 기록을 가져가야 하고, 발화를 찾아야 해.”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더 이상 두려움만이 있지 않았다. 결심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반대편 벽에 있는 작은 철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로 이어진 좁은 터널. 물이 차오른 통로를 헤치며 우리는 달렸다. 뒤에서는 총성과 함성이 번갈아 터졌다.

갈림길의 선택

터널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은 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길, 오른쪽은 완전히 어둠에 잠긴 길이었다. 성호가 공책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왼쪽은 빠져나가는 길일 거야. 하지만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오른쪽은 위험하지만, 발화로 이어질 수 있어.”

지현은 총을 고쳐 쥐며 말했다. “나는 오른쪽이야. 위험을 피하면 증거도 못 지켜.” 은서는 망설이다가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은요? 어디로 가야 하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남긴 길은 언제나 어둠 속이었어. 발화로 가려면 오른쪽이야.”

우리는 함께 어둠 속 길을 선택했다. 빛은 점점 사라졌고,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하라, 기억하라, 증명하라.” 은서는 녹음기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이건 아버지의 목소리예요.”

그 순간, 우리 발밑에서 물이 깊게 고이더니, 발을 잡아당기듯 울컥 일렁였다. 마치 터널 자체가 우리를 삼키려는 듯했다.

발화로 가는 길

우린 간신히 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 작은 나무문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손으로 새긴 듯한 글자가 있었다. “발화 — 너희가 찾는 것은 목소리다.”

은서는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였다. “아버지가 직접 남긴 거예요.” 나는 문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좋아. 이제 우린 발화로 간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함성이 울렸다. 설계자의 하수인들이 터널까지 따라온 것이었다. 지현은 문을 열기 전, 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 문을 열면, 뒤로는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난 준비됐어.” 성호는 떨리는 손으로 공책을 덮었다. “모든 기록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끝나. 우린 반드시 증명해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은서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이야.” 문이 열리자, 바람이 몰아쳤다. 그 안쪽은 어딘가 따뜻하고 낯익은 공기의 냄새가 났다. 다방에서 맡았던 그 향기.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는 총성이 울렸고, 앞으로는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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