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 균열 속의 동맹

숨은 골목의 회의

새벽 다섯 시가 지나자, 도시는 묘한 정적에 잠겼다. 비는 멎었지만 공기 속에는 습기와 피로가 가득했다. 우리는 광장 뒤편의 골목으로 숨어들어갔다. 지현은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단호했지만, 오랫동안 쫓겨 다닌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제 너희도 알겠지.” 지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설계자들은 단순한 집단이 아니야. 그들은 도시의 어둠 속에서 기억을 지배하고, 진실을 삭제해 왔어.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은서는 두 손을 움켜쥐며 물었다. “아빠… 정말 살아 있는 거죠?” 지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확실히 알 수 없어. 다만… 이 도시에 숨겨진 ‘세 번째 아카이브’에 단서가 남아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아카이브? 도서관 말고도 더 있다는 건가?” “그래. 첫 번째는 네가 찾은 도서관. 두 번째는 터널 속 메아리의 방.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설계자들조차 두려워하는 장소지. 거기에 박해문이 남긴 ‘마지막 증언’이 있을 거야.”

설계자의 그림자

지현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골목 끝에서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은서를 뒤로 숨기고 파이프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낯선 남자였다. 그는 검은 코트를 입었지만, 소매 끝에 은색 핀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레 다가오며 속삭였다. “난… 내부자다. 설계자의 하수인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들의 방식에 회의적인 자 중 하나다.” 지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길 찾아왔지?” 남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내 우리에게 건넸다. 그 위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308, 세 번째 아카이브의 열쇠.”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하지만 조심해라. 설계자 내부에서도 네 아버지를 지키려는 자와 끝내려는 자가 갈라지고 있다. 그 균열은 곧 폭발할 거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골목 위쪽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내부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젠장, 벌써 들켰군. 도망쳐라!”

새벽의 추격전

우린 다시 골목을 달렸다. 뒤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검은 코트를 입은 추적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소리는 군대의 행진처럼 규칙적이고 무거웠다.

은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끝이 없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만 다녀야 하죠?” 나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이건 도망이 아니야. 아카이브로 가는 길을 여는 거다. 우리가 살아남아야 그곳에 도달할 수 있어.”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지현이 앞장서서 방향을 잡았다. “이쪽이야! 내가 아는 비밀 통로가 있어!” 우린 좁은 철문을 밀어 열고 오래된 지하 주차장으로 몸을 숨겼다. 주차장은 폐허처럼 텅 비어 있었고, 바닥에는 낡은 자동차 부품과 깨진 유리조각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추적자들의 발소리는 곧이어 들려왔다. 그들은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하의 결투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주쳤다. 검은 코트를 입은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고, 그들의 눈빛은 매섭게 번뜩였다.

“넘겨라. 서류와 녹음기. 그렇지 않으면, 이곳이 너희의 무덤이 된다.”

나는 파이프를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지현도 작은 권총을 꺼내 들었다. 은서는 서류 가방을 꽉 껴안은 채 뒤로 물러섰다.

첫 번째 사내가 돌진해왔다. 나는 파이프로 그의 팔을 쳐내고 어깨를 가격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쓰러졌지만, 곧 두 번째 사내가 내게 달려들었다. 지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리며 사내의 다리에 불꽃이 튀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내는 여전히 서 있었다. 그는 다른 두 명과 달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강하군. 하지만 결국, 진실은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원통을 꺼냈다. 순간, 강한 섬광이 터져 주차장이 하얗게 물들었다. 우리는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섬광이 사라졌을 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바닥에는 한 장의 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세 번째 아카이브, 북부 폐역에서 기다린다.”

균열 속의 동맹

우린 쪽지를 주워들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역… 그곳에서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거죠?”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동시에, 설계자들도 그곳으로 몰려들 거야. 그건 전쟁터가 될 거야.”

나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그래도 가야 해. 이 싸움은 이제 도망칠 수 없는 싸움이야.”

지현은 녹음기를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네 아버지는 우리에게 증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증언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 하지만 그걸 지켜내지 못하면, 우린 단지 또 다른 희생자가 될 뿐이다.”

새벽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분명했다.

세 번째 아카이브. 그곳에서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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