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부 — 드러난 그림자
21부 — 낮의 침묵, 무너진 선
남궁이 계단을 올라온 순간, 집은 더 이상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낮의 햇살은 여전히 창문을 비추고 있었지만, 네 가족의 눈에는 모든 빛이 흐릿하게 보였다. 윤가의 웃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다은은 부엌에서 칼을 쥔 채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데도, 그녀의 귀에는 여전히 발걸음 소리가 맴돌았다. 설거지하는 물 위로 남궁의 눈빛이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을 움켜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이제 더 이상 숨을 수 없어.”
석민은 운전 중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백미러 속에서 아이들이 웃고 있었지만, 그 뒤로 또 다른 시선이 함께 있는 듯했다. 그의 손은 핸들을 움켜쥔 채 땀에 젖어 있었다. 귓가에는 여전히 남궁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진짜 주인은 나다.”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을 펼쳤다. 이번에는 계단 위에 서 있는 남궁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은 얼굴도, 눈빛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는 차갑게 굳어버리며 중얼거렸다. “아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어. 우리가 외면해온 진실을.”
기우는 과외 중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아이가 무심코 말했다. “계단에 있던 아저씨가 오늘은 웃고 있었어요.” 아이의 말은 장난스러웠지만, 그의 몸은 얼어붙었다. 억지로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차갑게 굳어졌다. “남궁은 이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1부 — 그림자와의 대면
그날 오후, 네 가족은 계단 앞에 모였다. 문은 이미 닫혀 있었지만, 그 너머에는 분명히 남궁이 있었다. 성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씨, 왜 올라온 겁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낮고 거친 목소리가 대답했다. “…너희가 나를 불러냈잖아. 나를 인정했고, 나와 거래했지. 이제 내가 여기에 있는 건 당연한 거야.”
다은이 두 손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이 집은 이제 두 주인의 집이야. 너희와 나. 하지만 손님이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
석민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우린 손님이 아니에요. 우린 이 집에서 일하고 있고, 살아가고 있어요. 당신 혼자만의 집이 아니에요.” 남궁은 낮게 웃었다.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곧 알게 될 거다.”
21부 — 균열 속의 두려움
그날 밤, 네 가족은 거실에 모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성호가 공책을 펼쳐 적었다. “남궁 — 계단 위 등장. 우리와 대면. 발언: 이 집은 두 주인의 집. 위험성: 최고조.”
다은은 눈을 감으며 속삭였다. “우린 이제 도망칠 수도 없어. 그는 이미 위로 올라왔어.”
석민은 손을 떨며 말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그와 맞서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잖아요.”
기우는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 “어쩌면 받아들이는 게 답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순간 우린 완전히 그의 인질이 돼요.”
모두가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공포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남궁과의 공존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립 또한 파국을 부를 뿐이었다.
21부 — 드러난 그림자
며칠 후, 결국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윤 부부가 외출한 낮. 집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서 울리는 발걸음은 점점 더 커졌다. 계단 위로 올라온 남궁의 그림자가 거실 벽에 드리워졌다.
네 가족은 숨을 죽였다. 다은은 입을 막았고, 석민은 손전등을 움켜쥐었다. 성호는 공책을 떨어뜨렸고, 기우는 몸을 굳힌 채 바라보았다.
남궁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피로에 절은 듯하지만, 눈빛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겠지?”
그 순간, 네 가족은 깨달았다. “그림자는 더 이상 숨겨진 존재가 아니다. 그는 드러났고, 이제 되돌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