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 — 균열 위의 불청객
18부 — 낮의 그림자, 드러나는 균열
남궁의 목소리가 귓속말처럼 스며든 이후, 집 안의 공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윤가의 부부는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지었고,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뛰어놀았다. 그러나 네 가족에게 그 평온은 마치 얇은 유리 위에 놓인 촛불 같았다. 언제 바람이 불어 꺼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다은은 부엌에서 그릇을 닦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지하 계단 쪽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성의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마치 낡은 열쇠가 돌려지는 듯한 소리. 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가 문을 열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은 쿵쾅거렸고, 손에 쥔 그릇이 덜덜 떨렸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백미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목소리 뒤로, 뒷좌석에 ‘또 다른 시선’이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계속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남궁의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곧 알게 될 거다. 누가 진짜 주인인지.” 그 말은 예언 같았고, 저주 같았다.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을 펼쳐보았다. 이번에는 계단 아래에서 손이 뻗어 올라오는 그림이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손톱, 그리고 손끝의 그림자가 아이들의 얼굴을 덮는 모습. 그는 차갑게 굳어버렸다. “아이들은 그를 보았다. 무의식 속에서 이미 인식하고 있다.”
기우는 과외 중 아이가 무심코 남긴 말을 들었다. “선생님, 어제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을 봤어요.”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기우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냥 네 상상일 거야.” 그러나 속으로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이제 그는 계단에 앉아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18부 — 문틈 너머의 새로운 요구
그날 오후, 네 가족은 계단 앞에 모였다. 문틈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가 가져온 책, 잘 읽었다. 하지만 더 필요하다.” 성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신문. 매일 아침 세상 소리를 알고 싶다.”
다은은 눈을 크게 뜨며 속삭였다. “신문이라니… 그건 너무 위험해. 만약 그가 세상의 소식을 알게 된다면…” 석민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할 수 없어요. 그가 점점 더 많은 걸 원할수록,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어져요.”
기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릴 해치지 않겠다고 다시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남궁은 낮게 웃었다. “…흥미롭군. 매번 약속을 요구하는군. 좋아, 약속하지. 하지만 기억해라. 약속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아.”
그의 말은 경고였다. 네 가족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협상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언제든 배신으로 변할 수 있었다.
18부 — 균열 속의 불청객
며칠 후, 네 가족은 신문을 준비해 계단 앞에 두었다. 문틈 너머에서 손이 뻗어 나왔다. 마르고 갈라진 손,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힘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는 신문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잠시 후, 문틈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군. 전쟁, 경제 위기, 정치인의 거짓말. 밖은 지옥이야. 난 옳았어.”
다은은 숨을 죽였다. 그의 말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정당화였고, 동시에 세상을 향한 분노였다.
성호는 공책에 기록했다. “남궁 — 요구 증가. 신문 →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정당화. 위험성 급증.”
석민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생존자가 아니야. 그는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어. 그리고 언젠가 그 증오를 이 집 밖으로 끌고 나올 거야.”
기우는 과외 중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가 무심코 물었다. “선생님, 지하에 누가 살고 있죠?” 그 순간 기우는 교재를 떨어뜨릴 뻔했다. 아이의 말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
18부 — 균열의 확장
밤이 되자 네 가족은 거실에 모였다. 성호가 무겁게 말했다. “이제 우린 인질이야. 남궁은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하고 있어. 그를 거부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계속 따를 수도 없어.”
다은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속삭였다. “우린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어. 이 집은 이제 우리의 집이 아니야.”
석민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언젠가는 결단을 내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무너질 거예요.” 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말했다. “결단은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 순간이 언제 올지는 몰라요.”
그날 밤, 금지된 문틈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누군가가 이 집의 진짜 주인이 될 거다. 그게 나일 수도 있고, 너희일 수도 있지. 하지만 윤가는 절대 아니야.”
네 가족은 몸을 떨었다. 균열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집은 이제 두 개의 세계를 품은 감옥이었고, 그 감옥은 곧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