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 — 침묵의 균형, 남궁의 이야기

16부 — 낮에도 사라지지 않는 기척

남궁이라는 이름이 드러난 이후, 집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네 가족은 여전히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다. 다은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했고, 석민은 차를 몰았다. 성호는 아이들의 미술 치료를 이어갔고, 기우는 과외 수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문틈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기척은 낮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은은 청소를 하다가, 먼지 사이로 희미한 발자국 모양이 지하 계단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얼룩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백미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린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감시자와 감시 대상이 동시에 되어 버렸다.”

성호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걸 확인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계단만 그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계단 아래 어두운 공간에 ‘사람 모양’을 덧그리기 시작했다. 얼굴 없는 형체, 혹은 미소를 지은 그림자. 그는 그 그림을 보고 손이 굳어 버렸다. 기우는 수업 중 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젯밤에도 또 발소리 났어요.” 아이는 장난스러운 듯 웃었지만, 기우는 억지 미소를 지어야 했다.

이제 네 가족은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남궁은 존재했고, 그 존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16부 — 남궁의 첫 고백

어느 오후, 아이들과 윤 부부가 외출한 틈을 타 네 가족은 계단 앞에 모였다. 성호가 문틈을 향해 낮게 물었다. “남궁 씨… 당신은 왜 이 집에 머물게 된 겁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는 나를 불청객이라 부르겠지. 하지만 난 오래전부터 이 집의 일부였다.”

석민이 물었다. “언제부터… 계셨던 겁니까?” “…십 년도 더 됐지. 주인이 바뀌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난 늘 여기에 있었다. 밖은 내게 지옥이었다. 빚쟁이, 경찰, 그리고 내 과거.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이 집은 나를 숨겨줬고, 난 그 대가로 집을 지켜줬다.”

다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지금도 우리를 지켜본다는 뜻인가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켜본다고도 할 수 있고, 지켜낸다고도 할 수 있지.”

그의 말은 애매했지만, 동시에 무거웠다. 그는 자신을 단순히 숨어 있는 기생자가 아니라, 이 집의 ‘수호자’처럼 여기고 있었다.

16부 — 균열 위의 공존

그날 이후, 남궁은 조금씩 더 많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문틈 너머로 그는 세상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네 가족은 잡지와 신문을 몰래 가져다주었다. 남궁은 그것을 받아들고 낮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마치 세상과의 끈을 되찾는 듯한 기쁨이 묻어 있었다.

성호는 공책에 기록했다. “남궁 — 단순 생존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을 집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상에서 도망쳤지만, 동시에 세상을 그리워한다.”

다은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문틈 앞에 놓인 빈 컵을 치우며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침입자인가, 아니면 그와 같은 공존자인가. 이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어.”

석민은 운전 중 라디오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안해졌다. 언젠가 남궁이 세상 소식을 직접 듣게 되면, 그의 욕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기우는 과외 도중 아이들이 남궁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그림과 글에는 ‘계단 아래의 그림자’가 점점 더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공존은 가능했지만, 그것은 매우 위태로운 균형이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 있는 촛불 같았다.

16부 — 균열의 예고

밤이 되자 네 가족은 거실에 모였다. 성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을 이 집의 일부라 생각해. 우리가 쫓아낼 수 있을까?” 다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럴 수 없어. 우린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어.”

석민이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우린 뭐죠? 단순한 손님인가요? 아니면 협상가인가요?” 기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린 균열 위에 서 있어요. 남궁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우릴 위협해. 언젠가 그 균형은 깨질 거예요.”

모두가 침묵했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남궁과의 공존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있었고, 그들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날 밤, 금지된 문틈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넌 알지? 균형은 오래 가지 않아. 언젠가 기울게 되어 있어.” 네 가족은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협상은 이미 동맹을 넘어, 서서히 지배로 변해 가고 있었다.

16부 - 침묵의 균형, 남궁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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