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부 — 드러난 균열, 두 주인의 집
14부 — 낮의 고요, 흔들리는 균형
라면과 물, 작은 전등을 문 앞에 두고 난 뒤로 집안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졌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윤가의 생활은 이어졌지만, 네 가족에게 이 집은 더 이상 단순한 기회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틈 너머의 존재와 거래를 시작했고, 그 거래는 곧 불안한 균형을 만들어냈다.
다은은 청소를 하면서 계단 앞에 놓인 빈 라면 봉지를 치웠다. 손끝이 떨렸지만,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스쳤다. “우린 침입자인 동시에 공급자가 되었어. 그와 연결돼 버렸어.” 그녀는 쓰레기를 봉투에 넣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라났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웃음과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는 문틈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손님이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네.” 그는 핸들을 쥐며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그가 밖으로 나오면, 우린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을 분석하며 더 불길해졌다. 그림 속 계단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어떤 그림에서는 문틈 사이로 웃는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공책에 기록했다. “아이들의 무의식이 감지하고 있다. 존재는 더 이상 숨어 있지 않다.”
기우는 과외를 하면서 아이가 무심코 남긴 말에 소름이 끼쳤다. “어젯밤에 누군가 계단에서 나를 쳐다봤어.” 아이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 순간 기우는 교재를 놓칠 뻔했다. 그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꿈이었을 거야.” 그러나 속으로는 차갑게 굳었다. “아이들도 느끼고 있어. 이제 이 집은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야.”
14부 — 협상의 그림자
저녁, 네 가족은 다시 모였다. 거실의 불빛은 환했지만, 그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성호가 말했다. “그와의 협상은 시작됐어.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게 단순히 라면과 전등일까?” 다은은 손을 모아 쥐며 대답했다. “그의 요구가 커지면 어쩌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걸 요구한다면?”
석민이 손을 탁 치며 말했다. “우린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어요. 이제 도망칠 수도 없잖아요. 그가 원하는 걸 주면서 시간을 벌어야 해요.” 기우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간을 버는 게 답일까요? 언젠가 그는 더 큰 걸 원할 거예요. 그때 우린 어떻게 할 건데요?”
침묵이 흘렀다. 모두 알고 있었다. 협상은 불안정한 균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 균형이 무너지면 파국이 찾아온다는 것도. 결국 네 사람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다.”
14부 — 문틈 너머의 요구
다음 날 오후, 아이들과 부부가 외출한 틈에 네 가족은 계단 앞에 모였다. 성호가 문틈을 향해 말했다. “필요한 게 있습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목소리가 대답했다. “…라디오. 세상의 소리가 듣고 싶다.” 다은은 얼굴이 굳었다.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외부와의 연결을 원한다는 의미였다.
기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대신 우릴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나요?” 문틈 너머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넌 협상을 좋아하는군. 좋아, 약속하지. 하지만 약속이 언제까지 유효할진 나도 몰라.”
네 가족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말은 위협이자 경고였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듯, 자신도 그들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았다. 균형은 유지되었지만,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유리 조각 같았다.
14부 — 두 주인의 집
그날 밤, 네 가족은 침대에 누워 잠들지 못했다. 다은은 문틈에서 본 눈동자가 떠올라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석민은 머리맡에 두었던 손전등을 붙잡은 채 잠을 청했다.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다. 이 집의 또 다른 주인이다.” 기우는 책상에 앉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손님이자 침입자였고, 이제는 협상의 인질이 됐다.”
집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기 직전의 정적이었다. 위층에서는 윤가가 웃음을 나누고 있었지만, 지하에서는 또 다른 주인이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네 가족은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가 알았다. “이 집에는 두 명의 주인이 있다. 그리고 그 균열은 곧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