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부 — 그림자와의 동거

13부 — 낮에도 이어지는 숨소리

그날 이후로 집은 완전히 달라졌다. 금지된 문 뒤의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낸 순간부터, 네 가족의 일상은 균열을 넘어 붕괴의 경계에 서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다은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석민은 운전석에 앉았으며, 성호는 아이들과 미술 치료를, 기우는 과외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언제 문이 열리고, 언제 그 눈빛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공포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낮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청소기를 돌리던 다은은 갑자기 멈춰 섰다. 문틈에서 아주 희미한 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와는 다른, 묵직하고 피로에 절은 듯한 호흡. 그녀는 그 자리에서 걸레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낮에도 깨어 있다. 단순히 밤의 그림자가 아니야. 이 집에 뿌리를 내린 또 다른 주민이야.”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석민은 운전을 하면서도 뒷좌석을 자꾸 확인했다. 백미러에 비친 아이들의 얼굴 너머, 빈 좌석이 마치 누군가의 체온으로 데워져 있는 듯 보였다. 그는 핸들을 움켜쥐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 차에까지 그가 따라온다면, 우린 도망칠 수 없어.”

성호는 정원에서 나무를 다듬으며 귀를 기울였다. 땅 속에서 묘한 진동이 전해졌다. 마치 지하에서 발걸음이 울리는 듯한 느낌.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저 문 뒤의 존재는 단순히 숨는 게 아니라,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낮에도, 밤에도.”

13부 — 균열 속의 침묵 회의

저녁이 되자 네 가족은 거실에 모였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대화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성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린 선택해야 해. 그와 대립할 건지, 공존할 건지.” 다은은 손을 모아 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존이 가능할까? 그 사람은 우리를 이미 손님이라고 불렀어. 손님은 언제든 쫓겨날 수 있잖아.”

석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어요. 그가 문 밖으로 나오면, 우린 다 끝장이에요. 차라리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해요.” 기우는 긴 침묵 끝에 단호히 말했다. “우린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그가 뭘 원하는지 들어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있어요.”

네 사람은 잠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꺼낼 수 없는 기대가 섞인 시선. 결국 그들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대화를 계속한다.”

13부 — 문틈 너머의 협상

다음 날 오후, 아이들과 부부가 외출하자 네 가족은 다시 지하 계단 앞에 모였다. 성호가 문틈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기 계시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낮고 거친 목소리가 대답했다. “…여전히 있군.”

성호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문틈 너머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손님이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네. 흥미롭군.”

석민이 나섰다. “우린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필요한 걸 가져다드릴 수도 있어요. 음식, 물… 어떤 거라도.”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라면. 그리고 전등. 이곳은 너무 어둡다.” 다은은 얼굴이 굳었다. 그는 단순히 숨어 있는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활을 이어가는 자였다. 요구는 분명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기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신…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실 수 있나요?” 잠시 침묵. 그리고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대답했다. “…너희가 날 존중한다면, 난 너희를 해치지 않는다.”

그 말은 협상의 시작이었다. 네 가족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두려움 속에서도 희미한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협상이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13부 — 두 세계의 불안한 공존

그날 이후, 네 가족은 문틈 너머의 존재와 조심스럽게 공존을 시도했다. 그들은 라면과 물을 계단 앞에 놓았고, 때때로 작은 손전등도 건네주었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지만, 그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봉지를 여는 소리, 국물을 끓이는 소리, 그리고 낮게 흘러나오는 기침.

다은은 청소를 하며 계단 앞에 놓은 빈 봉지를 치웠다. 손끝이 떨렸지만, 동시에 묘한 감정이 스쳤다. “우린 침입자이지만, 동시에 공급자야. 그와 연결돼 버렸어.” 석민은 운전을 하며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히 라면과 전등일까? 아니면 더 큰 무언가를 요구하게 될까? 성호는 공책에 적었다. “그는 지금 우리와 협상 중이다. 그러나 협상은 언제든 거래로, 거래는 언제든 갈등으로 변할 수 있다.”

기우는 과외 중 아이의 그림 속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소연은 계단 앞에 놓인 라면 봉지를 그렸고, 그 옆에는 얼굴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들마저 느끼고 있어. 이 집 전체가 이미 그와 우리를 함께 품고 있어.”

공존은 불안했고, 불안은 언제든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길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네 가족은 모두 알았다. “이제 이 집은 두 개의 세계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 되었다.”

13부 - 그림자와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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