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 — 균열 속의 협상

12부 — 낮에도 꺼지지 않는 불안

문틈 너머의 눈동자를 본 이후, 네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윤가의 가정부, 운전기사, 과외 교사, 미술치료사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성적이 오르고, 부부는 여전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들 내부는 무너지고 있었다.

다은은 부엌에서 칼을 잡을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채소를 자르는 단순한 동작조차 위험하게 느껴졌다. 언제든 금지된 문이 열리고, 그 눈동자가 다시 자신을 노려볼 수 있다는 공포가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생각했다. “저 남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면, 우리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을 다시 분석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지하 계단을 더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고, 어떤 그림에서는 문틈 사이로 웃는 얼굴이 비쳐 있었다. 그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손에 쥔 펜을 떨어뜨렸다. 기우는 교재를 펼쳐도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의 무심한 질문 ― “선생님, 혹시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나요?” ― 에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을 숨기느라 애써야 했다.

낮의 평온은 가면일 뿐이었다. 실제로는 매 순간이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 사람의 발걸음은 더 조심스러워졌고, 눈빛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집은 이제 기회가 아니라 감옥 같았다.

12부 — 다시 들린 목소리

그날 저녁, 아이들과 윤 부부가 외출한 틈에 네 가족은 거실에 모였다. 대화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성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분명히 우리를 알고 있어. 그 눈빛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어. 우리를 관찰해 왔다는 증거지.” 다은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그 사람에게 뭘 할 수 있겠어? 우린 이미 침입자야.”

기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선택해야 해요. 모른 척하면 언젠가 우리가 끝날 수도 있어요. 차라리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게…” 그 순간, 계단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네 가족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문틈에서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지?” 다은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석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있습니다.” 문 너머의 목소리가 웃었다. “…이제 날 인정하는군.”

그 순간, 네 가족은 깨달았다. “우린 이미 그의 시선 안에 들어 있다.”

12부 — 협상의 서막

다음 날 오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부부가 외출한 시간을 노려 네 가족은 다시 문 앞에 섰다. 성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화를 시도해 보자. 최소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아야 해.” 그들은 손전등과 물,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계단 앞에 놓았다. 문틈을 향해 성호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걸 알아요. 우리가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이제는 알게 됐어요. 대체 누구십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오래전부터 이 집에 살았어. 주인이 바뀌어도, 시대가 변해도, 나는 여기에 있었다. 내가 나가지 못한 게 아니라, 나가지 않기로 한 거야.” 기우가 물었다. “왜요? 왜 여기에 숨어 지내는 거죠?” “…밖은 내게 지옥이었어. 빚, 경찰, 추적자들… 여기만이 내 안식처였지. 난 이 집의 뿌리야.”

네 가족은 숨을 죽였다. 그는 단순한 불청객이 아니라, 집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다은이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그럼… 우린 당신에게 뭐죠?” 문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넌 손님이지. 오래 머문 손님. 하지만 손님이 언제든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

그 말은 네 가족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그들은 분명히 손님이었지만, 이미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집은 그들에게 기회를 준 게 아니라, 그들을 시험하고 있었다.

12부 — 드러난 균열과 다가올 선택

그날 밤, 네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은은 문틈에서 본 눈동자가 자꾸 떠올라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석민은 머리맡에 두었던 손전등을 계속 켜고 끄며 긴장 속에서 떨었다. 성호는 공책에 ‘그는 스스로를 집의 뿌리라 불렀다. 우리는 기생자다. 균열은 돌이킬 수 없다’라고 적었다. 기우는 책상에 앉아 한참을 침묵하다가 노트를 덮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이제 협상밖에 없어.”

네 가족은 모두 알았다. 문 너머의 존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와의 대화는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는 공존이든, 대립이든,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집은 이미 두 개의 세계를 품고 있었고, 그 세계는 충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금지된 문 틈새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알게 될 거야. 누가 진짜 주인인지.” 그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다. 네 가족은 몸을 떨었다. 협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파국의 그림자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12부 - 균열 속의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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