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부 — 어둠 속에서 마주친 눈빛

11부 — 낮의 평온, 속삭이는 불안

윤가의 집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부부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갔다. 집 안의 구조와 동선은 언제나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네 가족에게 이 평온은 마치 얇은 유리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금지된 문 너머에서 들은 목소리, 그리고 안쪽에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때렸다.

다은은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손끝이 떨렸다. 지하 계단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무심코 문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돌렸다. “아니야, 그냥 착각이야…” 그러나 귀에는 여전히 낮은 숨소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석민은 운전 중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백미러 속에서 뒷좌석의 그림자가 낯설게 보였다.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는 종종 뒷좌석에 ‘한 사람 더’ 있는 듯한 환영을 느꼈다. 그는 땀에 젖은 손으로 핸들을 움켜쥐며 속으로 되뇌었다. “저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 하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성호는 정원의 잡초를 뽑으며 땅에 귀를 기울였다. 땅 속에서 미세하게 울려 나오는 진동, 마치 누군가 지하에서 움직이는 듯한 감각.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문 너머의 존재는 단순히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점점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우는 과외를 하며 아이들의 글 속에 숨어 있는 불안을 읽었다. 소연은 무심코 “밤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라고 적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우의 손이 굳어졌다. 그는 그 문장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11부 — 균열 속에서 모인 가족

저녁, 네 가족은 다시 모였다. 식탁 위에는 차갑게 식은 밥그릇이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성호가 낮게 말했다. “그 목소리… 분명 사람이야.” 그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은은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움켜쥐며 속삭였다. “우리… 이미 선을 넘은 거 아닐까. 원래 이 집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그 사람일지도 몰라.”

석민은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지금처럼 계속 두고 볼 순 없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잖아요.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가 알지 못하면, 준비도 못 하잖아요.”

긴 침묵 끝에 네 사람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문 너머의 존재를 직접 확인한다.” 그들은 떨렸지만, 동시에 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고 느꼈다. 불안은 이미 일상을 잠식했고,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11부 — 열린 틈, 드러난 눈빛

다음 날, 아이들과 부부가 외출한 오후. 네 가족은 지하 계단 앞에 다시 모였다. 손전등, 장갑, 그리고 작은 음식 몇 개를 준비했다. 혹시 문 너머의 존재가 적대적이지 않다면, 최소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성호가 문고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문은 잠겨 있었지만, 안쪽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철컥.’ 자물쇠가 흔들리며 낡은 금속음이 울렸다. 그리고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왔어?”

성호는 심호흡을 하고 대답했다. “네. 우리는…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당신은 누구죠?”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안쪽에서 천천히 대답이 흘러나왔다. “…난 이 집에서 오래 살았어. 아주 오래. 주인이 바뀌어도 난 여기 있었어.” 네 가족은 숨을 죽였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은 단순한 불청객이 아니라, 집과 함께 살아온 또 다른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좁은 틈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였다. 문이 완전히 열리진 않았지만, 손전등 불빛이 닿은 곳에서 두 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피로에 절은 듯하지만, 동시에 매섭고 깊은 눈빛. 다은은 숨이 막히는 듯 뒷걸음질쳤다. 석민은 손전등을 떨어뜨릴 뻔하며 소리쳤다. “사람이야…!”

문틈 너머의 존재는 조용히 웃었다. “…이제야 보았네.” 그 웃음은 희미했지만, 네 가족 모두의 피를 얼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들은 알았다. “우린 이제 이 집의 비밀에 갇혔다.”

11부 — 균열의 확장과 두려움의 씨앗

네 가족은 황급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숨은 가빠졌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문은 이미 열렸다. 더 이상 뒤돌릴 수 없다.” 그날 밤, 집은 고요했지만, 고요는 평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공포의 시작이었다.

다은은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문틈에서 본 눈동자가 떠올랐다. 석민은 공책에 ‘사람 — 존재 확인. 눈빛 — 증오와 생존. 대화 가능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떨려 글씨가 삐뚤게 흘렀다. 성호는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다가 공책에 한 문장을 적었다. “우린 이 집에서 주인이 아니라, 침입자였다.” 기우는 교재를 덮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의 시간은 끝나고 있어.”

그날 이후, 네 가족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워졌고, 대화는 짧아졌다. 금지된 문 너머의 눈빛은 이제 그들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서서히 다가오는 파국의 전조였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곧, 무언가가 터져 나온다.”

11부 — 어둠 속에서 마주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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