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 문틈 너머의 얼굴

9부 — 긴장으로 잠 못 이루는 밤

밤은 유난히 길었다. 창밖에선 빗줄기가 얇게 이어졌고, 고요한 정원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마저 멎은 듯했다. 그러나 집 안의 네 가족은 아무도 편히 눕지 못했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들었던 낯선 울림이 귓가에 맴돌아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은은 부엌의 시계를 바라보며 분침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성호는 아이들이 그린 검은색 계단을 떠올리며, 그 이미지가 단순한 상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기우 역시 교재를 펴놓은 채 줄줄 흘러내리는 글씨를 붙잡지 못했다. 그들의 모든 의식은 하나의 지점으로 모였다. 금지된 문.

집은 평화롭게 보였다. 그러나 네 가족의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저 문 뒤에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는 정말 안전한가.” 긴장 속에서 지나간 시간은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아침이 밝자, 그들은 서로의 눈에서 같은 공포를 확인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숨겨진 균열이 현실로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9부 — 낮에도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낮이 되자 집은 평소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아이들은 등교했고, 윤 부부는 출근 준비를 하며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다. 거실에는 음악이 흐르고, 부엌에는 커피 향이 번졌다. 그러나 네 가족의 불안은 낮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은은 청소기를 돌리다 문틈에서 바람 대신 묘한 냄새를 맡았다. 눅눅한 흙냄새, 오래된 습기, 그리고 희미한 담배 냄새까지. 그녀는 재빨리 청소기를 끄고, 걸레로 문틈을 닦으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냥 오래된 냄새일 뿐이야…” 그러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성호는 정원의 나무를 다듬다가 유리창에 비친 계단의 그림자를 보았다. 햇빛이 비스듬히 떨어져 계단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그림자 속에서 그는 순간,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을 보았다.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뇌리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 “저 안에는 분명 사람이 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석민은 운전을 하며 아이들의 대화를 들었다. “엄마,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 나지 않았어?” 소연이 무심코 말했을 때, 차인정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바람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러나 석민의 손은 핸들 위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아이들마저 무언가를 감지하고 있다면, 더는 단순한 착각으로 돌릴 수 없었다.

9부 — 다가온 선택의 순간

밤이 다시 찾아왔다. 네 가족은 같은 방에 모였다. 조용한 숨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성호가 입을 열었다. “우린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저 문을 열어야 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다은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열면 끝이야. 우린 여기서 쫓겨날 거야.” 석민도 망설였다.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계속 저 문 앞에서만 떨고 있어야 합니까?” 기우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가진 건 이 집에 대한 정보예요. 문을 열어도, 닫아도 위험하다면… 차라리 먼저 알고 대비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사람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문을 열지 않으면 불안은 더 커질 것이고, 문을 열면 위험을 직면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날 밤, 성호는 공책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었다. “결정 — 내일, 문을 연다. 시간은 오후. 아이들과 부부가 외출한 틈을 노린다. 준비: 장갑, 손전등, 침묵.” 그는 밑줄을 세 번 그었다. 그리고 펜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집은 고요했지만, 그의 귀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9부 —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다음 날 오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부부가 외출하자, 집은 정적에 잠겼다. 네 가족은 지하 계단 앞에 모였다. 서로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호기심과 결의가 섞여 있었다. 다은이 떨리는 손으로 장갑을 끼고, 석민은 손전등을 켰다. 기우는 노트를 준비했고, 성호는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네 사람의 숨소리가 동시에 멎었다.

성호가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자물쇠는 오래되어 보였지만 여전히 강력했다. 그는 이마에 땀을 맺히며 말했다. “열쇠가 없으면 힘들겠어.” 석민이 주변을 살폈다. “혹시 숨겨 둔 열쇠가 있지 않을까요?” 다은은 갑자기 벽을 두드리며 낮게 외쳤다. “조용히 해! 들릴 수 있어.” 모두가 순간 숨을 죽였다.

그러나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멈춰 선 그 순간, 안쪽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안에서 누군가가 자물쇠를 만지는 듯한 소리였다. 네 가족은 얼어붙었다.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지만, 분명히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거기 누구야?”

그 목소리는 분명 사람이었다. 남자의 목소리, 그러나 갈라지고 약한 음성이었다. 네 가족은 눈을 마주쳤다. 두려움과 충격, 그리고 진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순간, 발자국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윤 부부와 아이들이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네 가족은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 앞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다시 비밀 속에 묻혔다.

9부 — 균열의 확장

그날 밤, 네 가족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문 너머에는 분명 누군가 있었다. 목소리를 들었다. 존재를 확인했다. 더 이상 상상이나 환영이 아니었다.

성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제 선택할 수 없어. 그와 맞닥뜨려야 해.” 다은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우리 모두 끝날지도 몰라.” 기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시작됐어요. 그 사람이 우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험해졌어요.” 석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은 조용했지만, 균열은 더 크게 벌어졌다. 네 가족은 이제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 집이 품은 비밀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문틈 너머의 얼굴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세상 밖으로 나오리라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밤은 다시 길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단순히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니라, 파국의 시작을 예고하는 밤이었다.

9부 — 문틈 너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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