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 숨겨진 문, 열리지 않은 진실

6부 — 금지된 문 앞에서

집 안에서 가장 미묘한 긴장감을 뿜어내는 공간은 언제나 ‘금지된 곳’이었다. 주방과 거실, 스터디룸과 정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 자리한 작은 문만큼은 달랐다. 그 문은 늘 잠겨 있었고, 열쇠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문틀에는 오래된 패드락 자국이 남아 있었고, 문 하단의 틈새로는 바람이 스치듯 먼지가 흘러나왔다.

다은은 매일 청소를 하면서도 그 문 앞에서 손길을 멈췄다. 걸레로 먼지를 닦아내는 일은 반복했지만, 안쪽의 세계를 상상할수록 오히려 더 닦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이 집은 완벽해야 해. 내가 닦지 않으면 누군가 흔적을 남길지도 몰라.” 그녀는 장갑 낀 손으로 문을 스쳤고, 얇은 금속의 차가움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어느 날은 아이들이 그 문 앞을 지나며 무심코 물었다. “여긴 뭐 하는 데예요?” 차인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창고야. 필요 없는 물건들 두는 곳.” 그러나 아이들의 눈빛은 순간 호기심으로 번뜩였다. 금지된 것은 언제나 매혹적이니까. 다은은 아이들이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게 일부러 소음을 냈다. “위로 올라가렴, 곧 저녁 준비할 거야.” 그날 밤 그녀는 오랫동안 뒤척이며 생각했다. ‘창고라면 왜 굳이 잠가 둘까. 왜 문틈에서 사람 냄새 같은 것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걸까.’

성호 역시 그 문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발걸음을 늦췄다. 전기공으로 일하던 그는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다. 문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전류음, 마치 오래된 보일러가 가동될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단순 창고라면 이런 소리가 날 리가 없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직접 열어 확인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컸다. 이 집의 신뢰를 잃는 순간, 그들의 계획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지된 문은 이제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네 가족 모두의 머릿속에 뿌리내린 의문이었다. 그 문을 열어야만 더 큰 그림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동시에 열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그들을 붙잡았다. 마치 심연을 바라보듯,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6부 — 불청객의 그림자

이상한 사건은 비 오는 밤에 찾아왔다. 가족이 모두 잠든 새벽, 현관 벨이 두 번 울렸다. 차인정이 잠옷 차림으로 나갔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현관 앞에는 작은 종이박스가 놓여 있었다. 박스 안에는 라면과 통조림, 초라한 의약품 몇 개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 실수로 잘못 두고 간 건가?’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다은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그 금지된 문과 연결돼 있다.”

다은은 박스를 몰래 치우려 했지만, 그 순간 지하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마치 누군가 무거운 것을 바닥에 떨어뜨린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그녀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고, 손에 든 박스가 흔들렸다. 곧장 성호가 나와 물었다. “무슨 소리야?” 다은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바람이 세서 문이 흔들렸나 봐.” 그러나 둘 다 그게 핑계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석민은 우연히 로봇청소기가 멈춘 지점에서 작은 발자국 모양의 얼룩을 발견했다. 지하 계단으로 이어지는 발자국이었다. 그는 얼룩을 자세히 보았다. 성인의 것 같았지만, 집안 식구들의 발자국은 아니었다. 발자국은 문 앞에서 멈춰 있었고, 그 뒤로는 사라졌다. 마치 문 너머로 발걸음이 이어진 듯했다. 석민은 급히 얼룩을 닦아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후로도 사소한 징후들이 이어졌다. 지하에서 새어 나오는 음식 냄새,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기묘한 소리, 계단에 떨어진 담배꽁초. 이 집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거주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네 가족을 옥죄기 시작했다.

6부 — 흔들리는 안심

윤가의 삶은 여전히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아이들의 성적은 오르고, 집안은 정리되어 있었으며, 운전도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네 가족은 더 이상 안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집 안에 자신들 외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심은 경계를 만들었고, 경계는 결국 균열이 되었다.

석민은 운전석에서 더 이상 대화를 엿듣는 데 집중하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늘 백미러를 통해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다은은 청소를 하면서도 문 앞을 닦을 때마다 손이 떨렸다. 성호는 아이들의 그림 속에서 ‘숨은 존재’를 찾아내려 애썼다. 아이들이 무심코 그린 어두운 선, 계단 모양, 닫힌 문을 그는 집착적으로 분석했다.

결국 네 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저 문 뒤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해.” 성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다른 세 사람은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열면 위험하고, 열지 않으면 불안하다. 집은 그들에게 안심을 준 듯했지만, 사실은 그 안심을 미끼 삼아 더 깊은 공포로 이끌고 있었다.

그날 밤, 다은은 침대에서 홀로 속삭였다. “우린 지금 빌린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야. 어쩌면 이미 다른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녀의 말은 공기 중에 사라졌지만, 그 울림은 오래 남았다.

6부 — 다가오는 균열의 전조

며칠 후, 집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지하 계단을 내려가려다 다은에게 크게 혼났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했다. “왜 안 돼요? 그냥 창고라면서요?” 다은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창고는 위험할 수 있어. 곰팡이가 심해서 몸에 안 좋아.”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말과 달리 심각했다. 아이들은 눈치를 챘고, 그날 이후로 더 자주 계단 쪽을 흘깃거렸다.

성호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는 밤마다 지하 계단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가끔은 분명히 들렸다. 아주 낮은 기침 소리, 물을 마시는 듯한 소리, 아니면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르는 소음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문 너머에 무언가 있다.” 그는 확신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언젠가 자신들의 세계로 튀어나올 것이라고.

네 가족의 얼굴엔 더 이상 웃음이 사라졌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긴장에 갇혀 있었다. 금지된 문은 그들에게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이 숨겨둔 진실이자, 그들이 밟고 있는 사다리의 기초를 흔드는 균열이었다.

이제 그들은 선택해야 했다. 문을 열어 진실을 마주할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하며 불안을 견딜 것인가. 어느 쪽이든, 이 집은 결코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